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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4 하나님이냐 우연이냐 (Ⅱ) (삼상 6:7-16)
작성일 :  2021-04-16 11:01
이름 :  admin E-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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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법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항상 하나님 자신의 거룩과 영광과 임재의 상징이었습니다. 또한 이 궤는 이스라엘 광야교회에서 절대 보호와 안전의 표징이었습니다. 이 궤의 행방은 곧 이스라엘 자체의 행방이었습니다. 이 법궤가 동하면 이스라엘도 동하고이 법궤가 정하면 이스라엘도 정했습니다. 지금 이 법궤를 두고 블레셋 방백들이 과연 하나님이냐, 아니면 우연이냐를 판가름 지으려고 하는 상황입니다. 현대인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아니면 사람(우연)이냐고 시비를 거론합니다. 여기에 말 못하는 두 암소가 매개되고 있습니다. 이 암소들이 법궤를 실은 수레를 끌고 이스라엘 본처인 벧세메스로 잘 가게 되면 과연 블레셋이 받은 재앙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고 그렇지 아니할 때, 그것은 우연이라고 단정할 판국입니다. 하나님은 이 말 못하는 암소들로 하여금 블레셋인들이 믿는 우연이란 우상을 깨뜨려 버리기 위한 섭리를 하셔야만 했습니다. 이같이 법궤를 위하여 부름 당한 이 암소들은 어쩌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운동을 위하여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과 그 교회의 소명에 대한 은유적인 상징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라는 소명 의식이 있는 자는 우연이란 함정에 빠지지 아니합니다.

  一. 벧세메스로 가는 두 암소

  1. 멍에 메어 보지 아니한 소였습니다(자기 십자가). 2. 젖 나는 소들로 송아지를 떼어 놓았습니다(자기를 부인). 주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아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소들은 울었다고 했습니다. 멍에를 맨 채로 울었습니다. 수레를 끌면서도 울었습니다. 불어 터진 젖을 안고 울었습니다. 3. 좌우로 치우침이 없이 바르게 올라갔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소를 끄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 소들이 평상시에도 다녀서 본능적으로 익히 아는 길도 아닙니다. 생전에 처음으로 메는 멍에를 메고 처음으로 수레를 끌면서 낯선 길을 주인도 없이 울면서 뚜벅뚜벅 걸어 곧장 벧세메스로 올라갔습니다. 벧세메스는 이스라엘의 경내입니다. 거기에 여호수아의 밭, 큰 돌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호수아 예수, 구원이란 의미입니다. 큰 돌은 반석을 상징합니다. 이곳을 향하여 두 암소는 법궤 실은 수레를 이끌고 갔습니다.

  二. 그 결과

  그 소들이 이스라엘 경내의 여호수아의 밭, 큰 돌이 있는 벧세메스에 정확히 이르러 머물러 섰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아무도 정지 명령을 말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암소들은 거기에 머물러 섰습니다. 이유는 오직 하나, 하나님께서 저들을 그렇게 섭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연이 아닌 증거입니다. 벧세메스태양의 집을 뜻합니다. 밝음의 집을 의미하는데 과연 그곳은 여호수아’(예수), 큰 돌(반석)’의 곳으로 의의 태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곳으로 상징됩니다. 이 모든 것이 어찌 우연이겠습니까?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사건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때 태양이 빛을 잃었고 지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지고 자던 성도의 무덤이 터졌습니다. 당시 이러한 광경을 보던 백부장은 그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27:54). 마찬가지로 세례요한의 최후가 우연이 아닙니다. 스데반의 죽음이 우연이 아닙니다. 야고보의 순교가 우연이 아닙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생명을 바쳐 예수 그리스도께 충성하는 것이야 말로 이 세상만사에 우연이 있을 수 없다는 산 증거입니다.

본문 12절에,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까지 따라 가니라고 했습니다. 16절에, 블레셋 다섯 방백들이 이것을 보고 그 날에 에그론으로 돌아갔더라고 했습니다. 저들은 이 모든 과정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연이 아니고 하나님의 손이 아스돗과 가드의 백성을 친 것임을 보고 알았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인생들 중에 지지를 받는 우연이란 함정(우상)을 깨뜨리시기를 원하십니다. 이우연이란 함정을 깨뜨리시는 방법은 하나님의 궤를 운반하고 있는 오늘의 교회운동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운동입니다. 이 십자가 운동은 소중한 것을 떼어 놓은(자기를 부인)아픔이 있습니다. 주의 주신 소명을 짊어지는(자기 십자가)수고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경해 보지 않는 새길, 진리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 길을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목적지까지 합심합력하여 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가지고 우연을 불식시키는 시금석으로 삼으십니다. 금년 새해가 결코 우연히 될 수 없습니다. 새해의 세계 역사가 우연일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장중에서 움직일 뿐입니다. 새해에 이루어질 우리 자신과 교회와 나라와 세계의 역사는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직접적인 손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세상 앞에서 이 사실을 증거해 보여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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